임시정부 수립으로 수렴되었으므로 임시정부는 곧 3․1운동의 결실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3․1운동의 선언서마다 독립을 선언했고 모인 군중마다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선언이었고 고창이었을 뿐이다. 그것을 구체화한 것은 임시정부 수립이다. 3․1운동이 국내외에서 일
정부승인과 재정.군사원조의 가능성도 크게 작용하였다.
태평양전쟁 발발을 전후하여 임정은 미국의 이승만과 연락 하에 중국.미국에 대해 정부 승인외교를 적극 펼쳤다. 1941년 8월 미국 대통령 로즈벨트, 영국 수상 처칠에 의한 대서양헌장 발표, 9월 영국 정부의 프랑스.폴란드 망명정부에 대한 적극
Ⅰ. 서론
일제가 1941년 12월 8일 진주만을 기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태평양에서도 일으키자, 중경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틀 후인 12월 10일 일본 등 주축국에게 선전포고의 성명을 전 세계를 향해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대일선전성명서
우리들은 三千萬韓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
*초기임정의 조직과 활동
-초기활동기(1919 - 1922)
-침체기(1923 - 1931)
-이동기(1932 - 1939)
-말기활동기(1940-1945)
1. 초기활동
- 임시정부의 활동을 국내에 소개한다든지, 혹은 국내사정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등의 정보연결과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 -연통제·교통국
- 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정
독립운동의 대동단결과 그 중심기관을 건설해야 한다는 요구는 3․1운동 이전부터 제기되었다. 1917년 7월 발표된「대동단결선언」에서는 “해외 각지에 현존한 단체의 대소․은현을 막론하고 규합 통일하여 유일무이한 최고기관을 조직할 것”을 제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