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문화적 상황
먼저 문화적 상황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문화적 요소에 포함되어 있는 한국인의 국민성에 대해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1910년 평양 대 부흥 이후 열린 첫 번째 국제 선교대회인 에딘버러 보고서에는 이러한 한국인의 국민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성격에서 한국인은 조용하고, 부드
조선이라는 나라는 예부터 많은 침략과 식민지배 아래 상한 마음을 가진 백성들이 많이 있는 그런 작은 나라였다. 한 선교사의 말처럼 조선인들은 실로 감성이 있고 종교에 대한 열의가 있었으며 그 열의는 불교, 도교, 유교 등의 종교 내지 사상을 받아드리고 민간에서는 샤머니즘, 애니미즘의 형태로
改新敎
Protestantism
16세기초 북유럽에서 중세 로마 가톨릭 교의(敎義)와 제의(祭儀)에 대한 반동으로 태동한 교파.
로마 가톨릭교, 동방정교회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3대 교파의 하나가 되었다. 유럽에서 일어난 일련의 종교전쟁을 거친 이후, 특히 19세기에 이르러 전세계에 다양한 형태로 급속하게 퍼
조선은 내적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으로 분열과 반목이 극심했으며, 외적으로는 서구열강에 의한 핍박을 받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등장한 개신교는 조선 인민의 샤머니즘적 정신에 부합되면서 조선에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구한말 직접적인 복음사역보다는 간접적
Ⅰ. 개요
1876년 문호를 개방한 이래 조선은 개화반대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1881년 일본정부와 청국정부의 권고로 기구 및 군제개편이었다. 이러한 군제개편에 의해 조선정부는 일본인 군사고문을 초빙하여 별기군이란 신식군대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