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1800년대 독일은 프라시아(프로이센) 절대주의 체제 하에 있었다. 당시 독일의 경제는 30년 전쟁(1618˜1648)중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또한 통일된 민족국가의 부재로 인해 방해를 받고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공통된 과거와 보편적으로 독일어를 사용한다는 점 제외하고는 공통점이 없었
칸트의 생애
1724 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 출생
루터교 경건주의의 영향
1740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입학
아이작 뉴턴의 저작을 접함
베를린 대학의 문학 교수 거절
쾨니히스베르크 철학 교수 취임
1781 <순수이성비판> 발표
1788 <실천이성비판> 발표
1790 <판단력비판> 발표
20여년간 쾨니히스
1. 칸트 윤리설의 이론적 배경
칸트의 생존연대는 1724년부터 1804년까지이다. 그러나 그가 주로 활동한 시기는 <순수이성비판>이 나온 1781년부터 <도덕형이상학>이 나온 1797년 즉 18세기 후반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가 독일에까지 파급되었던 18세기 전반에 독일적인 계몽사상에 영향을 받
Ⅰ. 도덕의 개념
도덕은 인간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근본원리이다. 도덕은 강제성은 없지만 인간이 인간과 인간, 그리고 자연과 균형을 이루며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하는 자연스러운 실천행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도덕의 원리는 어디에서부터 나타나게 되는 것인가. 도덕이란 무엇인가를 논의
도덕철학에서 등장하는 요청과 보편성의 원리에서 이러한 사유가 종교적 사유에 끼칠 영향력을 감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을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으로 다루냐는 칸트의 윤리학의 근본이 되는 원칙의 정식화에서 그 시대의 위대한 두 개의 정치적, 사회적 사건 - 한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