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십이곡』은 퇴계 이황이 관직에서 물러나 안동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고 학문에 열중하면서 사물을 대할 때 일어나는 감흥과 수양의 경지를 읊은 12수의 연시조이다. 전 6곡은 `언지(言志)` 후 6곡은 `언학(言學)`으로 되어 있는데, 이처럼 작자는 작품의 내용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자연에 묻혀
도산서당을 세웠고 사후 4년만인 선조 7년(1574)에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으며 선조임금은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의 현판을 사액하셨다. 1970년 정부에서는 서원을 보수 정화하여 성역화 하였다. 주요 저서로 계몽전의, 성학십도, 도산십이곡, 주자서절요, 심경후론, 활인심방, 예안향약, 자성록 등이
도산십이곡>의 대우는 초장, 혹은 초∙중장에서 나타나며 이어지는 장에서 이들의 통합을 추구하였다.
2) 반복
- 반복은 작품 전체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一, 제1연) 엇다하며 / 엇다하료 / 엇더하료 / 므슴하료 에서 보듯이 언어표현을 통한 반복이 작품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이 같은 반복의
a. <도산십이곡>의 문학사적인 가치.
- <도산십이곡>은 당시 철학자이며 사상가였던 이황이 지는 시가이다. 그가 시인이 아니었음에도 오늘날 이황의 <도산십이곡>은 우리 문학사에서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작자인 이황이 한국 사상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
도산십이곡>과 <고산구곡가>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제반 배경 사항들과 작품의 구조 분석을 통한 의미 해석을 한 후 두 작품을 대비하여 고찰해 본다.
II. 본론
1. 퇴계 이황, <도산십이곡>
(1) 퇴계 이황의 생애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연산군 7년)~1570년(선조 3))은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