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최근 일본의 독도가 자신이 땅이라 우기기에 반대하여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광고를 하는 등 여전히 독도를 둘러싸고 분쟁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 왜곡은 비단 독도 문제 한 가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자국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종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고대 한반
왜인(使送倭人) ·흥리왜인(興利倭人) ·투화왜인(投化倭人)으로 분류한다.
왜인들은 처음에 경상도의 연해안을 주로 이용하였지만, 점차 그 지역을 확대하여 무질서하게 내왕하게 되자, 조선에서는 그 폐단을 줄이기 위하여 1407년(태종 7)부터 경상도 병마절도사 강사덕(姜思德)의 건의에 따라 부산포
왜인전 등에 의해서 확인되는데, 이는 가야가 일찍부터 왜와 활발한 관계를 가져왔음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삼국지 한조의 “나라에 철이 나서 韓․濊․倭(한․여․왜) 가 모두 이를 얻어간다”는 내용으로도 뒷받침된다. 그리고 김해 池内洞(지내동) 옹관묘에 부장된 袋狀口綠
도 불구하고 1960년대 말까지 일본고대사 연구의 통설적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었다. 가야의 왜설(倭說) - 이노우에히데오는 임나일본부에 관련해서 선사시대부터 가야 지역과 일본열도의 교류는 활발하였고, 그 결과 일본열도에 한반도의 주민이 이주하였던 것처럼, 가야 지역에도 일부의 왜인들이 집
Ⅰ.임나일본부에 대하여
1. 임나일본부 어의(語義)
"임나일본부"란 임나(任那) + 일본(日本) + 부(府)의 합성어.
임나(任那) : "일본서기" 이외에도 "광개토왕릉비"삼국사기 강수전, 진경대사탑비, 한원, 통전(通典) 등 한국과 중국의 문헌에서도 확인되며, 가야의 이칭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