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왕인은 백제 14대 근구수왕(近仇首王) 28년(373년) 3월 3일 월나군(月奈郡)이림(爾林)의 성기동(聖基洞)에서 왕순(王旬)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지금의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의 성기동이다. 이곳 성기동은 '신령스런 바위(靈岩)'로 현묘하게 기봉준령(奇峰峻嶺)을 이루어 강정한 절의와 청고한
Ⅰ. 서론
종래의 통설에 의하면 1910년 한일합병이전 일본에 있던 조선인은 790명 정도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최근의 김영달, 산협계조의 [近代日本の外國人勞動者問題]에 의하면 한일합병이전부터 꽤 많은 수의 조선인이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 1880년대 이후 탄광노동자, 철도공사 노동자, 행상인 등
서론
재일 조선인 ‘재일조선인’이란 조총련에 소속된 재일동포나 일본정부의 외국인 등록에서 ‘朝鮮籍’으로 등록된 사람이 아니라 본래 조선반도에서 동일한 出自를 갖고, 일본에 의한 식민지지배의 결과 구종주국인 일본의 영역에서 생활하게 된 민족집단의 총칭이다. 재일교포, 재일 한국
도일도(渡日圖) ·학문전수도 등이 걸려 있다.
이 밖에 일찍이 외국문화를 받아들이고 전수하는 대외무역항구로서 선사시대부터 문화가 발달되고, 왕인이 일본으로 떠날 때 배를 탔던 상대포(上臺浦)도 복원되었다. 또, 왕인이 고향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마을을 돌아보았다는 돌정고개도 남아 있는데
1. 재일 조선인의 개념정의
재일 조선인은 일제 식민지정책의 산물로서 일제강점기에 도일(渡日)한 조선인들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초기에는 일본의 가혹한 경제수탈로 생활의 터전을 박탈당한 한국인이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1937년 중일전쟁(中日戰爭) 발발 이후에는 일제의 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