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沖庵) 김정(金淨)은 그의 학문, 인생에 있어 도학(道學)과 문학(文學)을 다같이 중시하였다. 그가 <十一筬>에서 “내가 어려서 수신(修身)을 중시하여 항상 도예(道藝)의 심연에 마음을 노닐고 문학의 수풀에 생각을 펴서 장차 원기(元氣)를 크게 머금고 은미한 이치를 깊이 헤아리려 하였다.”라고
도학(道學)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도학은 실천적인 성리학을 의미한다. 이러한 도학은 조선시대의 사회 전반에 영향은 실로 크다. 본고에서는 주자학의 영향을 받은 성리학, 특히 도학적 성리학이 조선시대 교육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현대 사회에서 도학이 갖는 교육적 의의를 알아보고자 한다. 또
성리학이란, 신유학(Neo-confucianism), 송학, 주자학 등으로 불리우는 송대의 주희가 만들어낸 새로운 학문체계로서 그 기본은 이기론으로 있었다고 말하여 진다. 성리학에 의하면 인간, 자연계를 통하여 다양한 존재의 근거를 이루고 또 존재상호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것은 절대불변의 초월적인 이(천리)
조광조는 그의 지성이 추구하는 이상을 현실적 장애를 무릅쓰고 구현하고자 애쓴 사람이다. 그가 취한 일관되고 고고한 행동은 그가 뿜어낸 열정으로 인해 조선왕조의 도덕적 위상을 향상시키는데 큰 기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소망했던 도덕 국가의 이상은 그가 도달했던 수준을 따르지 못
도학파의 분립동인과 대립양상을 다루고, 이들의 문학 논쟁이 우리 문학사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와 조선전기문학의 문학사적특징을 검토하고자 한다.
2. 조선전기 문학의 특징
성리학이 국시로 되고 또한 나라의 문학적 기반이 되면서 그것은 문학에도 큰 영향을 주어 지배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