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모든 것에 낯설어하는 이방인의 처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볼프가 1992년 9월부터 미국 게티센터 Getty Center의 초청을 받아들여 8개월간 산타 모니카에 혼자 체류하면서 더 첨예화된다. 이곳은 흥미롭게도 나치로부터 망명한 독일의 많은 작가들이 망명생활을 하던 곳
정신을 보존하기 위한 투쟁을 가르치고 그 감동을 흠뻑 느끼게 해주어야 하는 임무를 떠맡아야 했다.
더 나아가 문학과 문예학, 예술, 사회주의 교육제도 등 상부구조의 범주 내에서 ꡒ동독을 대표하는 자기표현ꡓ으로 자리매김한 독일 고전주의는 제도권 교육 안에서뿐만 아니라, 작업
작품에서 회귀적인 인물들 중의 하나였으며 1916년에 자진해서 망명할때까지 여행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비야가 암살된 해와 같은 해에 라몬 뿌엔떼와 함께 판초 비야에 대한 기억을 썼다.(1923) 그의 첫 번째 소설은 판초 비야와 함께 가자(마드리드, 1931) 였는데 총성이
작품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볼프강 카이저 Wolfgang Kayser는 현대적 소설의 발생과 위기 Entstehung und Krise des modernen Romans에서 모더니즘 소설의 태동을 인물시점적 화자의 도입과 연결시킨다. 사적인 화자란 서술된 내용에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관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