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뼈, 패총의 패각, 무덤 속의 나무관이나 인골 등과 같이 유적과 직접 관련이 있어야 하고, 채집될 때 확실한 층위나 위치를 가진 것으로서 그 어떤 외부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시료가 적합하다. 둘째, 방사성탄소연대측정 시에 필요한 시료의 종류나 양이 연구소나 측정 장치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동물뼈들이 포함되어 있어 이 지방의 선주민이 주로 어로생활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앞의 선주민과는 달리 내륙의 평지나 구릉지대에서 발견된다. 그 분포는 부산시내 전지역에 퍼져 있고 특히 동래지구에 집중되어 있다. 이미 원시적인 농경생활을 알게 된 그들의 사회와 문화는
동물뼈가 발굴되었다. 이러한 원시적 생계경제(subsistence economy)는 정착농업이 시작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병행되었다.
한국에서 농업이 등장한 것은 신석기 초기의 일이었으며, 그나마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 현상이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일찍 농업이 시작된 중동지방과 비교할 때 약 5,000년 정도 늦
동물뼈,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길러졌거나 수집된 곡물류 같은 식물의 흔적, 고대의 화로에서 나온 목탄 등을 모두 포함한다.
고고학 연구의 역사는 유물수집방법의 발달과 문화해석방법의 발전이라는 2가지 길을 걸어왔다. 유물수집에서는 자연과학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문화해석에서는 인문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