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미국 개입목적
미국은 東아시아 지역 내에서의 위기발생 가능성을 줄이기 위하여, 「아세안 지역 안보 포럼」(ARF) 및 APEC 등과 같은 지역협력체를 통한 교류․협력 촉진을 지원하는 한편, 역동적 경제발전을 통해 지역안정을 강화하고 美國의 경제적 이익을
국방에 필요한 병력 수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는 제1국민역의 대상이 되는 19세 남성인구의 감소를 초래한다. 현재 군이 추진하고 있는 국방개혁은 그와 같은 저출산 추세를 고려하여 군사력 구조를 인력중심의 양적구조에서 첨단무기체계 중심의 질적구조로의 전환을 꾀
국방정책의 목표로 삼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특히 탈냉전이후 경제위기 및 동맹관계의 약화로 북한의 군사력이 정체 내지 약화되어왔고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남한이 '부분적인' 전력증강을 넘어선 '대대적인' 전력증강에 나
동북아시아군사정세(동북아군사정세)의 변화추이
현재까지 동-서 관계에서의 냉전은 논의되어 왔지만, 비서방 세계에서의 냉전은 논의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냉전시기의 주요 격전지는 비서방 세계였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120개 이상의 분쟁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비서방
있는 중국이나 인도차이나의 사회주의 국가들의 변신이 기폭제였다. 특히, 중국의 개혁 및 개방 정책의 성과는 소련을 비롯한 유럽 사회주의 국가에게 본격적인 동요를 일으켰다. 고르바쵸프의 소련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는 중국의 개혁 및 개방정책의 실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