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지도 한국문학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서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문화적 전통을 망각하는 태도를 옥시덴탈리즘으로 볼 수 있는데, ‘문화와 제국주의’는 오리엔탈리즘은 물론 옥시덴탈리즘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진지한 책이라고 서평들이 전하고 있어서 읽어보고 싶었다.
‘고전주의’ 정도로 생각을 했었다.
물론 목차와 출판사 설명을 참고하고 나서 이 책이 내가 생각했던 부분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그 이색적인 느낌은 여전히 지워지지를 않는다.
나는 이 책 역시 세상에 대한 공부의 한 연장선상이라 생각한다.
추대된 사람이었다. 토마스 모어는 14살 때에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을 해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우고 당시 유럽의 새 물결인 르네상스의 기운을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모어는 법률가로 자라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뉴인 법학원에 들어가고, 23세의 나이로 변호사가 되었다.
이유
이 책을 읽는다면 “재앙의 근원은 과학이지만,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희망도 과학”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라는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의 말이 나를 이책을 선택하여 읽는 쪽으로 이끌었다.
레이첼 카슨은 이 책에서 인간에 의해서 파괴되어 버린 환경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공개
제국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극은 “서구 이데올로기로 만들어진 문화유형인 「나비 부인」에서 나타나는 성차별과 인종파별을 뒤집어 프랑스 남자가 환상에 빠져 자신이 핑커톤이고 그의 여인이 나비라고 생각하나, 극이 끝날 무렵 바로 자신이 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