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지역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세습무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많지가 않다. 앞에서 언급한 위도 원당굿(띠배굿)도 원래 세습무가 주로 진행하는 굿이었다. 그러나 조금례 무녀와 안길녀 무녀 이후 적당한 세습무를 발견하지 못하자 마을에서는 강신무를 데려다가 마을에서 무업을 가르쳐 사제로 이
Ⅰ. 개요
굿은 고대 이래 면면히 한국인의 애호를 받았고 즐겨 베풀어져 왔다. 그런 역사와 전통을 통하여 굿의 양면인 신들림과 놀이는 한국인의 심성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오늘날 도처에서 관찰되는 기독교의 성령처럼, 여러 신흥민족종교의 도통현상, 민간치병현상, 여전히 승한 굿판의
서설
굿이란 생활 속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없고 꺼리는 것이다. 우리 조원 역시 이 무속신앙중의 한 부분인 굿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면서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음의 그런 선입견과는 달리 조사할수록 생활 속에 무속신앙 즉 굿이 우리일상에 가까이 있고 무서워 할 것
㉮ 기록
굿에 관한 첫 기록은 《삼국유사》 <제 2 남해왕(第二南解王)조>에서 볼 수 있는데, 남해왕은 차차웅(次次雄)이라고 불렸고, 이는 방언으로 무당의 뜻이라고 적혀 있다. 또 남해왕 3년에 시조인 박혁거세의 묘를 세우고 제사를 지낼 때 왕의 누이동생인 아로(阿老)가 주관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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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판<심청전>이 존재함. - 판소리적 특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음, 희극적 인물이 등장하지 않음, 세속적 물정에 치중하지 않고 작품의 전체적 통일성을 구축함, 골계와 비장이 나타나지 않음.
4.심청가와 심청굿 무가
<심청굿 무가>는 동해안지역의 별신굿의 심청굿거리에서 구연되는 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