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중국 시인 두보의 생애와 시
서기 712년 두보는 하남성 낙양 근처인 공현에서 태어났는데, 공교롭게도 현종이 등극한 해와 겹치는 것도 재미있다. 그 가오를 멸하여 삼국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은 명장이자 좌씨전의 주석으로 이름이름 있는 학자이기도 했던 진의 두예의 후손이라 하나 그것은 13대
모두 5만여 수에 달하는 당시(唐詩)는 기원전의 주나라부터 남북조시내까지의 1천6백여 년 동안 생산된 시가 보다 양적으로 두세 배가 될 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다양성과 창조성이 그 어느 시대보다 풍부했다. 이렇듯 화려한 당대에 활약했던 이백과 두보야말로 각기 개성과 업적을 남긴 중국의
두보이다. 중당은 성당을 계승하여 두보의 영향권에 있어 현실주의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내용과 기교상 모두 진일보한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만당은 정치가 혼미해져서 나라가 망해 가는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적 특성으로 인하여 시도 화사한 표현에 주력하여 내용보다는 겉모양의 미화를 따
두보와 이백은 꼭 나올 것이다. 그만큼 당문화에서 詩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당대에는 詩風이 크게 일어났다. 이것은 국가의 태평과 정부가 이를 제창한 것과 크게 관계가 있다. 당대는 중국 고전시가의 황금시대이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에는 2천 2백여 시인이 창작한 5만여 수의
현실주의 시인 두보(杜甫) (712-770)
두보(杜甫)는 자가 ‘자미’이며 양양 사람이었다. 검교공부원외랑이란 벼슬을 지내 ‘두공부’라고도 불린다. 두보는 대대로 유학을 신봉하는 가문출신으로 벼슬에 대한 남다른 의욕과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의 늘 성실한 태도, 놀라운 끈기 및 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