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병이와 친해짐. 늑막염 재발. 안회남의 권고로 소설을 씀.
1931년 23세 4월 20일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다시 입학. 그 후 자퇴함(퇴학자 명단에만 있을 뿐 상세한 기록은 없음). 실레 마을에 야학당을 열다.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 조직. 농우가 지어 부름
1932년 24세 야학당을 넓히고 간이학교로 인가
1. 들어가는 말
김유정은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다. 흔히들 김유정의 문학을 대변하는 말로 토속적인 언어로 쓰인 해학과 풍자의 소설이라고 말한다. 또한 향토적인 배경을 담고 있는 소설, 「동백꽃」, 「봄봄」의 주인공들이 보여준 순수한 사랑
Ⅰ. 개요
그는 1930년대 그 질곡의 시대에 이 나라의 단편소설을 이끈 대표적인 작가였다. ‘겸허’- 이 두 글자를 병상의 야윈 손으로 마지막 힘을 다하여 써서 머리맡에 붙이고 요절한 작가 ‘金裕貞’. 1908년 춘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고독과 빈곤에 허덕이면서 유년
들병이로 나서겠다는 제안에 동조함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못난 얼굴 때문에 들병이로서 잘 나가지 못할 까봐 되려 아내를 탓함.
ex) … 호강이냐. 마는 년의 얼굴을 이윽히 뜯어보다간 고만 풀이 죽는
구나…경칠년, 좀만 얌전히 나왔더면 이판에 돈한몫 크게 잡는걸…
아내의 매춘을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