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다원주의 사회로 누구나 자신의 종교를 선택하여 추구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슈퍼마켓처럼 자율적인 개인을 최고의 실재로 부추기는 사회에서 우리는 슈퍼마켓 선반에 놓인 다양한 물건들과 우리가 좋아하는 상표의 물건들을 선택하는 자유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레슬리뉴비긴은 ‘다
레슬리뉴비긴의 견해를 빌려, 그 견해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그리고 문화적 다원주의에서는 다원주의가 복음과 함께 가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거듭 언급하지만, 레슬리뉴비긴이 그의 책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에서 밝혔듯이 이미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 생활 방식이 존
레슬리뉴비긴은 반성했는데 복음의 전달자로서 자신의 문화에 대한 비판자가 되고 아르키메데스의 점을 발견한다. 외국인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문화를 보며 외국은 토착인이 볼 수 있다고 하였다. 파니커는 아시아 정복 시도의 실패 요인은 도덕적 우월감으로 무의식적 주입이 반감을 샀고 배타적 진
성령과 선교(선교학적 의미)
성서적 복음의 전달자, 성령
1) 성령론의 선교학적 의미
a.성령에 대한 선교학적 재발견
선교적 선포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성찰은, 이제 우리가 선교에 있어서 성령의 중요한 위치를 주목할 때만이 선교의 본질이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테오도르 옴(Theodor Ohm)에 의하면 “
“당신을 찾도록 나를 가르치소서. 그리고 내가 찾을 때에 당신 자신을 보이소서.
당신이 나를 가르치지 아니하면 당신을 찾을 수 없사옵고 당신자신을 보이지 아니하면 당신을 발견할 수 없사옵니다. 당신을 갈망하는 가운데 당신을 찾게 하시고
당신을 찾는 가운데 당신을 갈망하게 하옵소서.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