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쟝르의 구별에 관한 명확한 인식은 새로운 시대의 미학적 사유에 내재하는 고도의 잠재적 능력이었다. 괴테와 쉴러의 문제 제기에는 이를테면 분열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고대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예술 법칙을 도출하여 그 법칙의 도움을 빌어 예술가
France, mère des arts, des armes et des lois,
Tu m'as nourri longtemps du lait de ta mamelle.
Ores(1), comme un agneau qui sa nourrice appelle,
Je remplis de ton nom les antres et le bois.
프랑스, 예술과 무훈과 법의 어머니,
너는 오랜 시간 나를 너의 유방의 우유로 키웠다.
지금 어미를 부르는 어린 양처럼
나는 당신의 이름으로 동
롱사르를 만나고, 그는 롱사르와 함께 파리에 가서 코크레 학원에서 휴머니스트 도라의 가르침을 받았다. 1549년 롱사르 등의 동지와 플레야드파(派)를 결성, 선언서 《불어의 옹호와 선양(宣揚) La Défense et illustration de la langue française》을 발표하였다. 그 해 1549년에 《올리브》의 첫판과 페트
롱사르를 만나고, 그는 롱사르와 함께 파리에 가서 코크레 학원에서 휴머니스트 도라의 가르침을 받았다. 1549년 롱사르 등의 동지와 플레야드파(派)를 결성, 선언서 《불어의 옹호와 선양(宣揚) La Défense et illustration de la langue française》을 발표하였다. 그 해 1549년에 《올리브》의 첫판과 페트
롱사르를 비롯한 7명의 시인들이 모여 결성한 플레야드파는 종교적 관심사와 휴머니스트의 과학적·고증학적 연구 사이에서 소멸될 위험에 빠져 있던 순수예술의 개념을 옹호하였다. 롱사르는 시집 《오드 4부집(1550∼56)》과 《연애시집(1552∼78, 3권)》에서 종교전쟁을 초월한 사랑·죽음·자연을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