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4년 관산성(지금의 충북 옥천)에서 당시 한반도의 세력판도를 바꾸는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신라의 진흥왕은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을 전사시키고, 557년에는 백제한테서 한강 하류 지역마저 빼앗는다. 또한 ‘남천주’ 지역에 있던 군사기지를 한강 하류의 ‘북한산주’ 지역으로 전진 배치하고 군
시대로 추정(장수왕)
현재 남한에 존재하는 유일한 고구려시대의 비석
단양 신라 적성비
국보 제 198호
소재지 :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
제작시기 : 신라(6세기 진흥왕)
한강 하류의 북한산비
낙동강 유역의 창녕비
함경도 지역의 마운령비, 황초령비
신라의 영토 확장을 기념해서 세운 비석
마운령비는 연호화 간지를 둘다 표기하고 있다. 연호가 법흥왕대부터 사용되었지만 연대 표기에는 간지 사용이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월일 표기에서 확실한 날짜는 월일을 표기했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는 월중으로 표기하였다. 요컨대 중고기 금석문에서는 연월일 표기에는 어떤 정형성이 나
마운령비를 세웠는데, 이후에 다시 고구려가 수복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고구려가 멸망하자, 8세기 초에 발해가 함경도 일대를 영토로 삼았다. 발해가 거란족의 침공으로 멸망한 이후에 함흥평야 일대는 고려에 소속되었으나 함경도 대부분의 지역에는 여진족이 거주하였다. 고려는 함흥평야 및 강원
마운령비>(摩雲嶺碑)와 <황초령비>(黃草嶺碑)를 세웠으며, <북한산비>(北漢山碑)를 세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역시 그 무렵이 아닌가 한다. 이중 <마운령비문>에서는 신라를 다스리는 제왕이 천하의 중심을 장악하고 평화와 번영을 이룩한다는 세계관을 품격 높은 문장을 통해 볼 수 있다.
3. 국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