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역사를 구성하고 있는 만주족은 시대에 따라 명칭이 달랐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숙신, 한나라 때는 읍루, 남북조시대 때는 물길, 수`당나라 때는 말갈, 송~명나라 때는 여진, 청나라 때 만주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만주 역사는 단군 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금, 청나라로 이루어져 있다. 만주
I. 들어가며
1. 한국, 중국, 일본이 본 만주국
만주국 중국은 일본과 러시아 제국주의자들이 이 곳을 중국에서의 분리를 위해 사용했던 만주(Manchuria)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뚱베이(東北)이라고 부른다.
은 만주 지방에 일제가 지난 30년대 초에 세우고,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중일 전쟁의 기간 동안 중
만주국이라는 배경을 토대로 활약했던 친일 인사들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이들의 존재는 일반 대중들에게 있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대부분 근대한국을 이해하는 중요한 핵심 인물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선정하게 되었다. 이들을 속히 만주국 친일파라 명명하겠는데, 이들에 대한 이해는 과
각 민족의 개별성을 주장함으로써 제국주의에 대항한 민족주의나 민족 자결주의에 맞서기 위해, 일제는 민족의 개별성보다도 각 민족이 협력해서 하나의 이상 국가를 건설하자는 ‘민족협화’를 제기했던 것이다. 민족협화는 만주청년연맹의 강령 가운데서 만주국 경영자들이 채택한 가장 중요한 부
만주건국으로 만주개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국책문학의 하나로 농민문학, 생산문학, 대륙개척문학을 강조한다. 1938년 일제는 <대륙개척간화회>를 결성하고 그들의 만주정책을 문학적으로 뒷받침하려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대로 한국의 문학계에도 파급되어 1938년을 전후하여 이기영을 비롯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