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말기 문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문학이란 차원을 넘어 정신사적 문제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문학은 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었는가 하는 질문과 관련된다. 이 질문은 표면적으로는 친일문제와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일제말기문학(1938-
만철」의 원조를 받아 「만선사」학의 기반을 구축했다. 그 상세 내용에 관해서는 제2장에서 논하겠으나, 동양사의 중핵을 없애는 중국사 연구에 앞서 우선 한국사 동시에 「만선사」로 연구가 진행되었고, 1910년대에 동양사학이 확립되었다라는 사실에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이 「만선사」학은 1930년
만철선로를 폭파하고 이를 중국 측 소행이라고 트집 잡아 만철 연선에서 북만주로 일거에 군사행동을 개시
에 대한 국제연맹의 간섭과 그 뒤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1933년)의 효과발생과 함께 南洋委任統治權(남양위임통치권)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려 1919년 6월 ‘베르사이유 조약’ 연합국과 독일군
만철 동경 지사 내에 ‘만철 지리 역사 조사실’을 설치하면서 이루어졌다. 연구의 테마는 당연히 ‘만선사’였다. 만주에 괴뢰국이 세워진 후 ‘만선사’ 연구는 한층 체계화되어 이른바 ‘만선사관’이라는 역사관이 만들어졌다. 이 ‘만선사관’은 한국사의 독자성과 자주성을 부인, 한국이 태고
만철 동경 지사 안의 만철지리역사조사실을 중심으로 동양사 연구가 진행되었다. 여기서는 겉으로는 만주와 한반도의 역사 지리조사를 임무로 삼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식민정책의 토대를 다지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만선사관이라는 역사관이 만들어졌다. 일선동조론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