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천은 당대이 사상에 대해 철저히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지성적 투쟁을 주장하였다. 그는 장로교내에서도 그 영향이 잇었다. 장로교 내에서 일치와 순결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은 두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지성적”으로 옹호하여하였다. 그 작업은 그의 발표한 글에서 이루어졌다. 둘
지적하고 메이천박사를 중심하여 새로 출발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가도록 권한 것은 박형룡박사의 신학과 사상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과 사상을 연구할 때는 반드시 구 프린스톤 신학전통의 맥락에 비추어서 연구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Ⅰ. 서 론
교회에 대한 메이천의 시각은 일부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재세례파나 독립 교회파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분의 관점은 신실한 개혁주의와 장로교 신학자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론을 포함한 그분의 신학적인 시각은 주로 프린스톤 신학의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제1장 개혁신앙을 위한 교회
1. 조직신학자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
죽산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은 구 프린스턴 신학전통의 마지막 주자인 메이천박사의 신학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신학적 배경은 일제 하 식민지통치에서 한 민족의 교육과 개화에 힘썼던 평양 숭실 전문학교에서 시작
박사는 신학적으로 1812년 프린스톤 신학교의 설립부터 1929년 이사회가 재편성되어 신학적 좌경화를 이루기 이전까지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주장되고 교수되어온 구프린스톤 신학전통의 줄기에 선 신학자였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과 사상을 연구할 때는 반드시 구프린스톤 신학전통의 맥락에 비추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