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명대전기의 유래
-남희; 극본인 동시에 공연양식이 됨
-명대전기; 극을 위한 대본, 즉 Text의 기능만을 하게 됨
즉,, 남희는 연희 방식의 희곡으로 공연이 위주였으나, 명대전기는 읽는 문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처럼 남희와 전기가 양식이 다르므로 성격상 많은 차이점을 보이게 되는데 가령 남
(1) 오대 전기 이후 전기의 침체
명대 초기에 오대전기가 나왔지만 이후 약 50여 년 동안 전기는 침체하였다. 침체의 원인으로는 우선 명초의 심한 사상적․문화적 통제로 인해 자유로운 정착이 불가능했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들 수 있다. 교화와 관계없는 작품을 엄금한 희곡에 대해 내려진 금령은
전기(傳奇)를 발전시키는 것에 큰 공을 이루었다 할 수 있다. 북방의 잡극(雜劇)이 강남 지방으로 진출하면서 소박한 단계에 있었던 <남희(南戱)>에게 자극을 주어, 남희를 계승 발전 시켜 새로운 형태의 희곡인 전기(傳奇)가 드디어 성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명대 사람들은 흔히 <남희(南戱)>를 이속(俚俗
2. 전기의 유래
명대 초기의 전기는 남송 때 강남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성행했던 남희南戱 혹은 희문戱文이라고 부르는 희곡으로부터 비롯되었다.
* 남희와 전기의 비교
① 남희는 척齣(단락)을 나누지 않았으며, 척명齣名도 물론 없었다. 그러나 전기의 경우는 척을 나누고 또 그 내용을 총
전기라는 명칭이 당대소설 전체를 지칭하는 명사로 바뀌어졌다. 후세에 와서는 당대소설 뿐만 아니라 송대에는 제궁조(諸宮調), 원대에는 잡극(雜劇), 명대에는 희곡을 전기라고 부르게 되어 혼동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런데 호응린(胡應麟 ․ 1551~1602)이 《소실산방필총(少室山房筆叢)》에서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