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을 스크린에 그려낸 영화 명량은 그 동안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순신 장군을 한 인간으로써 표현하는데 애썼다.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으로 합류하라는 조정의 압박에 맞서 홀로 전쟁을 선택해야만 했던 충신으로써의 갈등, 걱정하는 아들을 뒤로 하고 전장으로 나가야만 했던 아버지로
명량 소개
“명량대첩” 임진왜란 당시의 해전
1597년 명량 (현재의 진도 앞바다)에서 누명을 벗고 다시 복귀한 이순신이 남아 있는 단 13척의 배로 험한 물살과 지형을 이용해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해상권을 회복한 대첩
‘죽기로 싸우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1597년(선조 30년)에
임진왜란
조선 14대왕 선조는 누구인가?
11대 임금 중종의 서자인 덕흥군의 3남
13대 임금 명종(34세) 후손이 없어 왕위에 등극
☞ 문정왕후, 윤원형, 정난정 : 직위동안 문정왕후 수렴청정
☞ 개국 이래 정통성이 가장 취약한 왕
궐 안 밖에 믿고 의지할 정치세력도 없이 왕위 계승
☞ 붕당정치로 타
ⅱ. 이순신 장군과 명량해전.
임진왜란은 ‘명을 칠 테니 길을 빌려 달라’ 는 구실로 쳐들어온 일본과 7년간을 치룬 전쟁으로 조선 전기와 후기의 분기점을 삼을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초래한 큰 사건이다.
이 때 전쟁은 크게 두 가지, 지상전과 해전으로 구성되었다. 지상전은 일본의 신무기 조
명량해전
이순신이 통제사에서 물러난 뒤 원균은 三道水軍統制使가 되어 일본 수군과 대전했으나 多大浦․漆川谷에서 대패하여 해상권을 상실하였다. 원균의 패전으로 같은 해 白衣從軍 중인 이순신을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로 기용하였다.
이 때 이순신은 패전 후 남은 13척의 전선과 수군을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