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학의 근간이 되었다. 왕양명은 인간이 본래 선천적으로 ‘*양지(良知)'를 갖추고 있는 존재이므로 자연의 심정에 준해서 행동한다면 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양지 : 《맹자》의 '깊은 궁리를 하지 않고서도 알 수 있는 것’.
성리학에서는 성인의 경지는 배워서 도달할 수 있는 것임에
却說滿洲太宗下令退軍, 衆貝勒都來諫阻, 太宗把意見詳述一番, 說得衆貝勒個個歎服。
각설만주태종하령퇴군 중패륵도래간조 태종파의견상술일번 설득중패륵개개탄복
각설하고 만주태종은 군사를 물리라는 명령을 내려 여러 패륵은 모두 막을 간언을 하러 와서 태종은 의견을 한번 자세히 서술하니
태조는 손승종이 요동을 수비함을 듣고 몇 년동안 감히 쳐들어오지 않고 단지 병정을 파견해 심양에 이르러서 정지를 건축하게 하며 좋은 장인을 불러모아 궁전을 건축했다.
把沈陽城開了四門, 中置大殿, 名篤恭殿, 前殿名崇政殿, 後殿名?寧宮;
파심양성개료사문 중치대전 각독공전 전전명숭정전 후
却說江陰被陷, 明遺臣已亡了一半, 只有宜興、太湖、吳江、徽州等處, 尙有抗?的明臣。
각설강음피함 명유신이망료일반 지유의흥 태호 오강 휘주등처 상유항청적명신
遺臣 :①전대(前代)부터 남아 있는 신하(臣下) ②왕조(王朝)가 망한 뒤에 남아 있는 구신(舊臣)
각설하고 강음이 함락을 당해 명나라
원나라가 쇠퇴한 틈을 타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두른 홍건적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홍건적의 두목이던 주원장은 마침내 몽고족을 몰아내고, 1368년에 도읍을 양쯔 강 유역인 금릉(지금의 난징)으로 정하고 명(明)나라를 세웠다. 명나라 태조가 된 주원장은 홍무제(洪武帝)라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