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 문인이라는 이유로 장형(杖刑)을 당하고 평안북도 희천으로 유배된다. 다시 47세에 전라남도 순천시로 유배지를 옮긴다. 이 시기에 평안도 희천에서 정암 조광조에게 도학을 가르쳐서, 조선에서 도학의 정통을 이어주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후에 51세에 갑자사화가 일어나
무오사화를 겪기 전까지는 폭군의 모습이 아니었다. 즉위 초에는 그래도 성종조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졌고, 인재가 많았던 덕분으로 민간은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연산군의 이 4년 동안의 치세는 오히려 성종 말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퇴폐풍조와 부패상을 일소하는 기간이었다. 그래서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외에도 8가지의 큰 사화가 있었다. 우리는 사화 중에서 시대 순으로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무오, 갑자, 기묘, 을사사화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2) 무오사화
(1) 배경
무오사화가 일어난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개인 간의 원한, 향촌사회로
3.결론
:4대사화는 1575년(선조 8)에 이르러 당쟁(黨爭)이 일어나기 전의 선비들에 대한 옥사였다. 그러나 사화는 소수인의 음모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 아니고, 파당을 가진 다수인의 공공연한 논쟁이 따르는 대립과 투쟁에서 패자는 반역자로 몰려 지위를 빼앗기거나 목숨을 잃고, 한 파가 승리하면 이
3. 사화
1) 무오사화(戊午士禍)
성종이 죽은 후 세자 융(연산군)은 조선 제 10대 왕으로 즉위했다. 즉위 초에는 전국의 모든 도에 어사를 파견하여 지방관들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백성들의 고초를 살폈다. 연산군 초기는 겉으로는 평화로운 문치주의가 계속된 시기로 보이지만 그 밑에서는 사림파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