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육문제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은 해외 유학생의 교육비로 최소한 45억에서 46억달러를 지출. 무역으로 남긴 흑자 총액이 108억 달러 정도. 무역흑자액의 42%에 해당하는 규모. 지난 해까지 해외에 체류하는 유학생과 연수행의 숫자가 약 34만 정도임을 고려할 때 이 액수는 최소 수준임을 알 수 있음
일제로서는 한국 독립운동자들을 단속하는 데에 상당한 곤란을 느끼고 있었다. 이 점은 일제의 임시정부 대책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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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일제시대행정(일제강점기행정)과 지방제도개혁
일본은 지방행정의 각종의 후진성과 폐습을 개혁한다는 구실 하에
일제는 1907년 7월에 조선총독부령에 의한 주세령 공포로 제일 먼저 주세를 세금원의 대상으로 삼고, 같은 해 8월에는 주세령 시행규칙 공포가 있었다. 또 9월에, 주세령(酒稅令)의 강제 집행이 시작됨과 동시에 전통주는 맥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1916년 1월에는 주류 단속이 강화되는 가운데, 전통주류는
단속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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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일제강점기(일제, 식민지시대)의 기독교정책
이 때에는 교회가 부흥의 일로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특히 기독교는 서구 선교사들이 전도한 종교이며, 기독교 세력의 배후에는 선교사들과 서구의 열강들이 있다는 점
일제는 1904년 10월 일본공사관 산하 `경성영사관련' 제3호로 사실상 서울에서 처음으로 매춘업을 허락하면서 자국의 공창제를 국내에 널리 퍼뜨렸다.
1916년 3월에는 총독부 경무총감부령 제4호 `유곽업창기 취체규칙'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단일한 단속기준을 만들고 정식으로 공창제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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