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맹순열전 끝에 “묵적은 송의 대부인데 방어를 잘하였고 절약을 하였다”고 하였으며 그 시대에 대하여도 “혹은 공자와 동시대라 하고, 혹은 그보다 뒤라고 한다”고 하고 있다. 반고의 한서에는 “묵자의 이름은 적이고, 송의 대부가 되었는데 공자보다 뒤의 시대에 살았다”고 하고 있다.
손
Ⅰ. 묵자의 원류와 사회적 배경
1. 狩野直喜의 설
淮南子 要略訓에 이르기를 “묵자는 유자의 업을 배워 공자의 술을 공부하였으나 그 예가 번거로와 쉽지 아니하고, 장례를 후하게 하여 재물을 낭비하고 백성을 가난하게 만들며, 의복이 생활에 불편하며 일에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주의 도
Ⅰ. 묵자의 생애
중국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 이름은 적(翟). 그의 행적은 분명하지 않다. 묵자 및 그의 후학인 묵가(墨家)의 설을 모은 《묵자(墨子)》가 현존한다. 《묵자》는 53편이라고 하나, 《한서(漢書)》 지(志)에는 71편으로 되었다. 최종적으로 성립된 것은 한(漢)의 초기까지 내려간다고 추정
1. 묵자의 저서와 생애
묵자의 이름은 적으로 그의 행적은 분명하지 않다. 묵자 및 그의 후학인 묵가의 설을 모은 《묵자》가 현존한다. 《묵자》는 53편이라고 하나, 《한서》지(志)에는 71편으로 되었다. 최종적으로 성립된 것은 한의 초기까지 내려간다고 추정된다. 그 내용은 다방면에 걸쳤으나, 중
묵자는 그 제도 등의 타당성과 효용성에 회의를 품고 이들을 좀 더 유용한 것으로 대치시키려고 하였다.
주대 봉건체제하에서 왕 제후 대부들은 각각 자기의 군사적 전문가들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周末 봉건제도의 붕괴와 더불어 이 군사전문가들은 각기 흩어져 사용자에게 봉사함으로써 생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