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의 자는 시백, 호는 석파이다. 그는 순조 20년(1820) 남연군의 넷째아들로 태어나 12살에 어머니를 잃고 17살에 아버지를 잃은 후 사고무친(四顧無親)의 적막한 청소년기를 보낸다. 그는 21세 되던 헌종 7년(1841)흥선정이 되고 2년 후에는 흥선군에 봉해졌다. 그리고 헌종 12년(1846)
사건)가 일어나 정철의 맏형이 체포되어 매를 맞고 귀양을 가는 도중에 죽고, 부친은 겨우 죽음을 면하고 관북 정평으로 유배를 당했다가 1551년(명종 6)에 풀려났다. 부친이 풀려난 이후 부친을 따라 고향인 전남 창평으로 내려가 살면서 김윤제의 문하가 되어 성산 기슭의 송강(松江)가에서 10년 동안 수
사건의 발단으로서 노루(獐) 선생의 숭록대부를 축하하는 잔치가 등장함으로써 주변의 많은 동물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초대된 동물들은 주인인 장선생을 포함하여 자리를 정하지 못하는 무질서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점에 주목한다면 잔치는 “나이 다툼을 자연스럽게 유도해내기 위한 장
사건, 서술자의 개입, 무대 상연 가능성을 문학 갈래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사건의 유무에 따라 서정과 서사·희곡으로 나누고, 서술자의 개입의 유무에 따라 서사와 서정·희곡으로 나누었으며, 무대 상연 여부에 따라 희곡과 서정·서사로 분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도 명확하지
사건(盧溝橋事件)을 계기로 중국 국민당 정부에 선전포고, 대대적인 중국 공격에 나서게 된다. 국민당의 장제스는 내전을 멈추고 결사항전을 선언하면서, 8년간의 중·일 전쟁(中․日 戰爭)이 막을 열게 된다. 중·일 전쟁의 개막은 중국 내에서 활동하던 조선인들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그동안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