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하기 전에 주야晝夜로 여기에서 서書를 읽고 사射를 익힌다. 그 서書는 오경五經 및 사기史記·한서漢書·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삼국지三國志·손성孫盛의 진춘추晉春秋·옥편玉篇·자통字統·자림字林이다. 또 문선文選이 있어서 이를 가장 중히 여긴다.”(구당서, 고구려조) 고구려 경당(堂)
문선文選>>에서 설론(設論)의 일종으로 정리한 고부의 체인 것이다. 이미 주인과 객이 문답을 주고받는 부의 구성을 띠고도 있지만 또한 비교적 수사가 정리되어 있고 대우(對偶)에 얽매이지 않은 고문 시어를 쓰고 있어 문부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문부는 당나라 때 시작되었는데, 전형적인 작품
문선文選》: 38종류의 문체 제시
- 청나라 《문체정변 文體明辯》: 127종의 문체 제시
- 이는 문체의 종류가 번잡스러워졌음을 뜻하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옛사람들이 인간의 감정 을 표현해 내기 위하여 얼마나 문체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음
(2)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성정
문선(文選) 등을 교재로 해서 경전 이해와 문장 수련에 아울러 힘쓰도록 하는 교육을 실시했다. 788년(원성왕 4)에는 독서삼품과를 두어 국학을 거친 인재를 관직에 등용하는 제도를 더욱 정비했다. 독서삼품과는 과거제에 근접된 제도였지만, 인재등용을 개방하는 구실을 한 것은 아니다. 진골귀족이 아
미혼 자제를 수용하여 교육시킨 지방의 학교였다. 교육내용은 독서와 활쏘기를 비롯하여 5경(五經),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 삼국지(三國志), 문선(文選) 등이 읽혔다.
이곳에서는 화랑도와 마찬가지로 교육기관인 동시에 군사적 기능도 수행하였다. 이것은 고려 이후에 서당의 전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