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그 해에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공립 명문 경성제2고보(현재의 경복고)에 입학하였다. 이때 생활은 학교 기숙사에서 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고정옥이 일찍이 서울의 명문학교로 진학한 것을 보면, 그가 어린 시절부터 수재로서 집안의 기대를 모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관적 합리성을 잃고 사변적 내지 관념적 체계에 사로잡히게 됨으로써 현실사회와 유리되어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공론(空論)만을 일삼는 폐단에 빠져 있었다. 특히 임진 · 병자의 양란 이후 사회 · 경제적 질서가 붕괴되는 상황 속에서도 개국이래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채택된 주자학은 피폐된 사
관심을 갖던 인사들이 이런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문장을 짓기 위해 진한 시대의 고문(古文)에 관심을 갖고 배우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김영, 「연암을 읽는 두 가지 코드,『사기』와『장자』」,민족문학사연구, 통합 30호 vol.30, 2006
따라서 연암 또한 장자에 대한 높은 관심을 통해
문학관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다음은 그의 글 「문예와 생활」의 일부분이다.
현실 위에 성립되는 생활에는 시대의식, 사회의식, 민족의식이 포함되며, 문예는 바로 이러한 생활의 표백이요, 기록이요, 흔적이요, 주장이다. 고로 문예에서 생활을 제거하면 시대의식, 사회의식, 민족의식이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