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조약이 체결된 지 100년, 광복을 맞이한 지 60년이 되는 2005년에도 우리는 아직까지 “친일의 추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은 독도를 내놔라, 국제 사법재판소 가자며 떠들고 있고 이런 사태를 ‘맞아죽을 각오하고’ 한국과 일본 중 누가 더 냉정하니 마니 책으로까지 써서 이야기한 어느 유명
11.13. 내면의식을 추구한 시
11.13.1. 시문학파가 개척한 길
‘시문학파’가 형성된 1930년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가 이른바 문화통치에서 군국주의적 무단통치로 강화되기 시작한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국내에서는 문화운동만이 가능했는데 1930년을 전후하여 전개된 순수문학운동도 이
친일문학이라 함은, 오로지 친일파들의 문학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자들의 작품일지라도 그것이 그런 요건을 충족하는 이상 친일문학으로 논해야 한다.
한국의 근대문학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계몽주의적 엘리트주의를 견지하며 발전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1920년대의 낭만주의나
일본을 통해 거의 무제한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식이며, 다른 하나는 정작 문화 및 문학의 전달자인 일본과는 적대적 관계에 서는 민족의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최재서의 비평을 비롯한 한국근대문학 전반에서는 쉽게 이 민족의식이라는 관념이 찾아지지 않는다. 친일문학론을 제시하던 시
근대문학의 화려한 개척자로 칭송받았으며, 그런 그답게 근대문인 중 가장 호사스럽고 안하무인격인 행동으로 위세를 떨쳤던 김동인이었지만 호사와 방탕이 가져다 준 경제적·정신적 파탄은 그를 가장 통속적인 야담소설가로 밀어뜨리고 끝내 친일문학가라는 늪으로까지 그를 끌고가, 죽음에 이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