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석탑과 부여 정림사지석탑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도 옛 백제 지역에서는 백제시대 석탑의 양식을 계승한 석탑이 다수 만들어 졌는데, 이들을 백제계 석탑이라고 한다. 이 백제계 석탑은 양식적 특성상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한국 석탑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미륵사지 석
1. 미륵사지 답사 선정의 동기
익산 주변에 사는 사람이라면 현장 학습 또는 미륵산 등산을 위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았을 법한 곳이다. 나 역시 이런 저런 이유로 미륵사지를 여러 번 가보았지만 갈 때마다 느꼈던 건 '정말 볼 것 없네.'라는 생각뿐 가슴에 남는것이 없었다. 사람도 몇 명 없는 썰렁한
미륵사와석탑
미륵사는 백제 무왕이 만들었다는 절이다. 현재는 단지 절터만 남아있고, 미륵사지 석탑만 지키고 있지만, 고려 시대까지도 남아 있었고, 조선 중기 이후 없어졌다고 한다. 현재 조사결과로는 미륵사는 백제의 가장 큰절이었다고 한다. 미륵사지 석탑이 있는 전북 익산, 익산은 얼마전
2) 조성 배경
백제계 석탑은 충청, 전라지역 즉, 백제문화권이었던 지금의 호남권에서 대부분 발견된다. 왕궁리 오층석탑을 제외하면 모두 고려시대에 세워진 이 백제계 석탑들은 백제 전형양식이라 불리는 정림사탑을 거의 모방하거나 부분적으로 닮아있다.
고려 태조 왕건(877-943)은 통일 후 고대
1860년(철종 11) 경주(慶州) 사람 최제우(崔濟愚)에 의하여 창도된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신흥종교.
최제우는 전통적인 유교(儒敎)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유교 경전을 배워, 성년이 되어서는 지방의 유학자로 이름이 나 있었다. 당시 한국은 어린 헌종의 즉위로 외척(外戚)의 세도정치가 계속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