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발의 심체는 과연 순선한 것이냐 악할 수도 있는 있느냐 등의 문제에 이르러 서로의 견해를 주장한 것이다. 이들의 견해차는 점차 확대되어 호서지방의 학자들과 낙하지방의 학자들의 학문적 대립으로 이어지게 되어 사단칠정논쟁과 더불어 조선 성리학을 특징짓는 양대 논쟁이 될 만큼 중요한 논쟁
Ⅰ. 들어가며
1. 호락논쟁의 배경
호락논쟁(湖洛論爭)은 18세기 중, 후반에 발생하였다. 그러나 사학(史學)계의 의견을 참고하면 호락논쟁의 맹아(萌芽)가 이미 양란 이후 발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락논쟁이 기호학파(畿湖學派), 정치적으로는 노론(老論) 내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주자의 형이상학은 주렴계의 태극도설을 골간으로 삼아 장횡거가 논한 ‘기’, 이정이 말한 형이상, 형이하 및 ‘리’와 ‘기’의 구분 등을 융합했다. 따라서 주자의 학문은 이전 도학자들의 학문을 집대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학에서 가장 큰 문제는 ‘리(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장자에
1. 다도
일본인들은 차를 마심에 있어서 단지 그 맛을 음미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러 사람이 모여서 차를 마시는 순서와 차를 대접하는 방식, 다도구의 제작 양식들을 일정하게 정하고 각 단계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다실을 꾸미고 다도구를 준비하여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즐기는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