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의 국권회복운동은 처음부터 장기전을 전제로 한 운동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애국계몽운동에는 문화운동뿐만 아니라, 신교육구국운동, 언론계몽운동, 민족산업진흥운동, 국채보상운동, 신문화신문학운동, 국학운동, 민족종교운동, 해외독립군기지 창건운동 등이 그 주요내용을 이루었다.
Ⅰ. 1910년대의 정부수립운동
1910년의 ‘합방’후 국외에서 처음 ‘정부’수립운동이 태동한 곳은 미주지역이었다. 미주한인사회의 형성은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이민 121명이 1902년 12월 22일 인천항을 출발하여 이듬해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한 이래 1905년까지 한인 이민은
한인 협회'가 설립되어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의 거점이 되었다. 당시 하와이 조선인 이민은 한인협회 활동 외에도 농장에서 번 돈을 독립자금으로 기부하여 독립운동에 협조했으며, 박용만이 헤이스팅스 소년병 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유한양행 설립자인 유일한도 미국 유학 당시 소
2. 미국
1902년 12월 인천항을 떠난 101명의 한인들이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타고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지 이제 100년이 지났다. 그 후 재미한인사회는 미국과 한국의 변화하는 정치경제적 관계 속에서 다양한 배경과 동기를 가진 한인들이 이주하여 성장을 거듭한 끝에 현재 중국(230만
미주 미산현 사곡행에서 태어났다. 사곡행이라는 것은 양복점 거리란 뜻이니까 아마 부근에 양복점이 줄지어 있는 번화한 상점가였던 것 같다. 생가의 문 앞에는 높이 솟은 느름나무가 있는데, 소식의 아버지 소순이 손수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풍아한 아취를 지닌 그 생가에 삼소, 즉 아버지 순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