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회담을 개시하기까지의 기간으로 북한군의 붕괴로 UN군에 의한 북한 전 지역의 점령이 임박하게 되자 대규모의 중공군이 개입함으로써 전쟁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압도당한 UN군은 북한으로부터 철수해 1951년 1월 4일 서울이 또다시 공산군의 수중에 들어갔으나, 길
휴전하고 현재까지 남북대치상태에 있음’이라는, 지극히 도식화된 전개에 불과하다. 전쟁의 내막이나 구체적인 전개 양상은 지금까지 이상할 정도로 무시되어 왔다. 100만이라는 피해자를 낸 민간인 학살을 그 중에서도 가장 금기시된 부분이었다. 이 글에서는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학살과 그에 대한
휴전선상 최북단 종교시설 탐방 → 중식 → 자유수호평화박물관 → 도착
2.서부전선 파주
파주는 한반도의 허리이자 통일관광 중심지로, 연평균 120만명의 내 ,외국인들이 찾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통일안보관광지.
58,000원
* 포함내역 : 중식,가이드비,입장료,여행제반경비 등
임진
휴전 이후 3,756명이 북한에 납치됐고 이들 가운데 454명이 귀환하지 못하고 억류됐다. 이밖에 6·25 당시 납치된 민간인과 국군포로 가운데 상당수가 귀환하지 못하고 있다. 미송환 국군포로는 4만 1,971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중 명단이 확인된 생존포로는 343명에 이른다.
Ⅱ. 남북이산가족문제에
1. 한국전쟁의 원인
한국전쟁의 기원, 원인에 대한 국내 연구는 1970년대 까지 전통주의 시각의 구도아래 일면만을 강조해 왔다. 따라서 한국전쟁의 전체적인 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전쟁의 원인을 일방 측에 떠넘기는 식의 연구가 주를 이어 왔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와서 국내의 한국 현대사 연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