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한 제주도 4․3사건, 여수․순천 사건, 무장게릴라 남파 등 폭력도발을 통해 적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남한 사회의 혼란조성 노력을 병행하는 가운데, 1949년 6
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하면서 남북한 동시선거를 통한 통일정부 수립을 제의하는 등 위장 평화공세를 전개하였다.
서문: 역사 속의 교훈
1991년 소련의 ‘붉은광장’에서 레닌의 동상이 흥분한 대중들에 의해 끌어내려지는 장면이 TV로 전 세계에 방영된 이후, ‘사회주의’ 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관련된 모든 논쟁은 일순간에 사라졌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혁명적으로 변혁되는 공산주의로의 이행기로
통일노선 선전 ▵민족공조를 통한 남한내 이른바 선군통일전선(친북통일전선) 구축과 남한사회주의 혁명역량강화 ▵적화통일 및 김정일의 통일대통령 만들기를 꾀하고 있다.북한이 선군정치 실시이후 대남전략면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평화’와 ‘민족’ 인데도 남한의 일부 정치세력이나
통일 기반구축을 위한 사회의 혼란조성 노력을 병행하면서 1950년 6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명의의 호소문을 통해 평화통일의 제 조건을 제시하는 가운데 1950년 6월 25일 ‘민족해방전쟁’이란 명분하에 전면적인 남침을 개시하였고 1953년 7월 휴전과 함께 다시 분단 상태로 남게 되었
통일은 사실 대외적으로는 프랑스와의 외교와 대내적으로는 남부에서의 정치적 투쟁이라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2단계는 게릴라혁명전쟁단계이고 이것은 1959년부터 1964년말까지의 시기로서 게릴라혁명전쟁이라는 형태의 무장투쟁과 민족해방전선을 통한 정치투쟁을 결합하여 통일을 추구했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