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민족해방의 조선독립과 공산정치의 동일기를 획책하고 민족, 사회 양운동자를 통일하기 위한 국민당(國民黨) 조직의 전제로서 천도교를 기초로 할 것\"을 결의함으로써 최초로 구체적인 민족협동전선의 조직형태를 거론하였다. 이 결의에 따라 2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강달
회를 발전적으로 해체시켜 조직한 사회주의 단체였다.
일월회의 지도자인 안광천, 하필원은 1926년 귀국하여 곧 정우회에 가입하였다. 이후 정우회를 장악한 안광천, 하필원은 11월 15일 역사적인 정우회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정우회 선언은 사회주의자들이 민족협동전선에 참여하는 이론적 배경이 되
2. 신간회의 창립과 그 성격
1) 민족협동전선론과 정우회선언
신간회는 1927년 1월 「민족단일당」․「민족협동전선」이라는 표어아래 조직계획이 발표되고, 2월 15일 창립을 보게 되었다.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민족․사회 양주의자가 제휴한 공동전선으로서 합법적인 결사운동(결사운동)이
협동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좌파민족주의자들이 민족협동전선에 대해 공개적인 공감을 표명한 것은 1925년 1월부터였고 사회주의계는 1923년 이후 신간회가 창립될 때까지 민족협동전선론을 논의하였으며 그에 따른 조직적 결집을 실천하였다.
3) 조선민흥회
1926년 7월 8일 서울청년회와 조선물산장
민족운동세력을 탄압․거세하던 당시의 정치․사회적 현실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한국전쟁의 결과 우리 사회 전체에 전면화된 냉전논리로 인해 우리 사회는 ‘민족’적인 것이 실종되고, 민족주의를 거론하는 것조차 불온시되는 상황을 맞았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민족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