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바르트 그 스스로가 말했듯이 그의 신학은 고요한 어두움을 깨운 커다란 종소리의 반향만큼 실로 컸다. 바르트의 기독론의 특징은 단순히 그의 신론과 창조론과 나란히 하여 그리스도론(인격과 사업)을 다룰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신학이 ‘기독론적’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Ⅰ. 서론
바르트에게 있어서 모든 신학은 그리스도론이 된다. 즉, 신학은 그리스도의 이름과 사건으로서의 그리스도안에 표함되어 있는 것에 대한 것을 진술하고 표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론이 모든 것을 규정함으로, 칭의론, 화해론, 구원 뿐만 아니라 창조론, 인간론, 선택론, 교회론 및 종말론, 하
Ⅰ. 헤르만 군켈의 신학
헤르만은 한편으로는 칸트학파의 일원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 슐라이어마허의 제자였다. 그에 따르면,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로부터 발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인간의 활동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하
칼바르트는 스위스의 개혁교회신학자이다.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 하느님의 말씀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신정통주의 신학자라고 불린다. 칼 바르트는 유년기와 청년기를 베른에서 보냈으며, 1904년 베른 대학교, 베를린대학교, 튀빙겐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신학생 칼 바르트는
3. 칼바르트와 에밀 브루너의 신학 논쟁
1900년이 되어 20세기가 시작되었지만 자유주의 신학자의 대가인 하르낙(Adolf von Harnack)과 헤르만(W. Hermann)의 신학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의 한복판에 폭탄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젊은 목사인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