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경향은 그 이론의 체계를 더욱 정비해가면서 상호 논쟁하는 양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본고에서 다룰 박용철의 「기교주의설의 허망」은 1935년 12월에서 1936년 3월 에 걸쳐 있었던 ‘기교주의 논쟁’의 기교주의 논쟁은 논자의 논의를 집중적으로 구명하는 맥락에서 연구되어왔다. 이런
30년대 후반 순수시에 대한 정리ㅡ시문학파 시인
김영랑, 정지용, 박용철은 1920년대초 백조류의 감상주의에 대한 극복을 부르짖으면서 시단에 등장, 나름의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측하는데 성공하였다. 특시 이들은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는 점을 내세워 언어의 조탁과 전통적인 시가 율격에 기초한 시
시가 긍정적 평가를 받을수 있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보조 수단에 머문 20년대의 시를 극복하려 노력하였고, 그 결과 순수시와 모더니즘시 생명파 등 감각적인 시가 많아 졌다. 필자는 30년대 모더니즘과 상대되는 순수시의 대표적인 시문학파 시인인 정지용․김영랑․박용철의 순수시에 대해서
Ⅱ. 임화의 시론
지금까지 임화에 대한 연구는 주로 그의 시적 경향을 논의하거나 아니면 그의 문학이론을 프로문학과 관련해서 논의하는 쪽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그의 시론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그의 대부분의 시론이 아주 단편적인 것이라든가, 또는 너무
Ⅰ. 근대시
근대시(문학) 형성 과정 자체가 일제 식민지 화 과정 아래 놓이게 됨으로써 근대시 형성기의 문인 혹은 지식인들의 사유는 이 같은 특수한 과정에 끊임없이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은 근대문학 연구자들이 그 동안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특히 그들 대부분이 일본 유학생이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