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가 황희에게 뇌물을 보내다가 걸린 일이 있었다. 이 두가지 큰 스캔들 이외에도 처남들인 양수와 양치가 위법을 저지른 것이 발각되자 ,그들은 잘못이 없고 단지 풍문일 뿐이라는 글을 세종에게 올려 구차한 변명으로 청남들을 구해낸 적도 있고 관청에서 몰수한 과전을 아들 황치신에게 돌려주려
○ 고려시대 일부일처제의 증거
박유가 아뢰기를, “우리 나라는 본래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데 지금 신분의 고하를 물론하고 처를 하나 두는데 그치고 있으며 아들이 없는 자들까지도 감히 첩을 두려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인원수의 제한이 없이 장가
맞을 만큼 여성의 재가에 대한 큰 규율이 없었는데, 여성에게 혼인의 선택권이 주어지고, 그만큼 자유로웠음을 보여준다. 박유가 원의 부부제도를 보고 처첩제도를 공인할 것을 청하자 고려시대의 여인들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을 했고, 결국 시행하지 못했다는 일설이 고려사에 전해지고 있다.
잡지와 신문기사, 인터넷 사이트 등을 기본으로 하여 자료를 수집․정리하고 덧붙여 인터뷰 내용과 관련 도서를 참고하고 조원들과의 의견교류를 통해서 작성하였습니다.
2. 현대자동차 노조소개
소속연맹 : 금속산업
위원장 : 박유기
조합원수 : 43483명
본조 - 24737명
아산 - 242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