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방계통의 기사가 소홀해졌으며, 간혹 인용 전적(典籍)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뿐더러, 잘못 전해지는 사적을 그대로 모아서 수록한 것도 눈에 띤다.
우리는 내물왕과 박제상에 관한 일화를 두 사료를 통해 분석하고 비교해 보면서 어느 것이 더 역사적 타당성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삼국유사>
제 8 대 아달라왕 즉위 4년 정유에 동해가에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부부가 살았다. 하루는 연오랑이 바다로 가 해초를 캐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 (고기 한 마리라고도 한다)가 연오랑을 업고 일본으로 갔다. 일본 사람들이 보고 이상한 사람이라 하여 왕으로 삼았다 (日本帝記를 살펴보
1, 요약
1) 만고충신 박제상과 돌이 된 여인
“나는 임금의 명령을 받고 적국으로 들어가니, 그대는 나를 다시 볼 기약을 하지 마오.” 148p
신라의 17대 내물왕이 즉위한지 36년 경인년(390년)에 왜왕이 화친을 제의하며 사신을 보냈다. 사신은 화친의 뜻으로 왕자 한명을 보내 달라 청했다. 고민 끝
지금 살고있는 세상은 참으로 편리하고 빠르다. 여러 가지 첨단 기술의 발달로 시간과 노력을 조금만 기울여도 이전보다 양질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볼 수도 있다. 우리들은 좀 더 첨단의 기술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시대 속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