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채, 박희병 옮김, 『나의 아버지 박지원』, 돌배게, 1998.
은 이처럼 수많은 연암론 중 하나다. 연암의 아들 박종채가 쓴 글로 냉철한 분석과 조리 있는 ‘연암 이해’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지극한 공경과 찬탄, 그리고 애정을 담아 연암의 행적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이 점이야말로 오히려 이 책의
박종채가 《과정록(過庭錄)》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면, 큰 키에 살이 쪄서 몸집이 매우 컸으며 얼굴은 긴 편이었고, 안색이 몹시 붉었으며 광대뼈가 툭 불거져 나오고 눈에는 쌍꺼풀이 있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현재 남아있는 박지원의 초상화와도 거의 일치한다. 또한 박지원은 목소리가 몹시 커
-박지원-박종채-박규수’로 이어지는 명문가이다. 5대조 박미는 금양위 (錦陽尉)로서 선조의 5녀 정안공주의 부마였고, 조부 박필균은 경기감사, 대사간, 호조·병조참판, 동지돈령중추부사를 지냈으며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는 우의정, 평안감사를 역임하였다. 어머니는 함평이씨 이창원의 딸이다.
박종채가 쓴 『과정록』에 의하면 연암은 중년 이후 장자에 출입하기도 했다고 한다. 박수밀, ‘박지원의 노장사상 수용과 신선관’, 『도교문화연구』 제22집, 한국도교문화학회, 2005. p. 36
또한 그는 열하일기 서문에서 장주를 언급함으로써 그가 장자의 영향을 짙게 받았음을 자백하고 있고, 「호질
쌍거풀이 지셨으며 귀는 크고 희셨다. 광대뼈는 귀밑까지 이어졌고 기름한 얼굴에 수염이 듬성듬성하셨으며 이마 위에는 주름이 있는데 마치 달을 치어다 볼 때 그러한 것 같았다. 키가 커 훤칠하셨으며 어깨와 등은 곧추섰고 정신과 풍채는 활달하셨다. 박종채,『과정록』, 한국한문학연구, 제6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