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하면서 현실주의적 입장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낙론계가 많았으며,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北學思想) 조선의 현실을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당시의 양반사회에 대한 비판과 현실개혁에 대한 내용들이 그들의 저서에는 많이 담겨져 있었다. 유수원의 『우서』, 연암박지원의 『열하일기』, 담
등을 주장하고 양반 문벌제도의 비생산성을 비판하였다. 또한 농업에서도 영농 방법의 혁신, 상업적 농업의 장려, 수리 시설의 확충 등을 통하여 농업 생산력의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앞서 언급한 이러한 북학파의 사상가들 중에서 초정 박제가와 연암박지원의 경제사상을 알아보도록 한다.
/구암과 효종 때 주전의 필요성과 대동법의 실시를 주장한 김육을 들 수 있다. 실학이 학문적 체계를 이루게 된것은 유형원/번계에 이르러서이고, 하나의 학파를 형성하게 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 이익/성호과 박지원/연암에 의해서이며, 실학사상은 19세기 초기 정약용/다산에 의해서 집대성되었다.
실학파의 학파적 성립을 보게 된다. 성호 이익을 중심(大宗)으로 하고 권철신 · 이가환 · 안정복 등이 주축이 되어 제도개혁론을 주장하는 18세기 전반의 성호학파와 청나라의 문화와 청에 들어와 있는 서양의 선진 과학기술을 적극 받아들이자는 담헌 홍대용(1731-1791) · 연암박지원 · 초정 박제가(1750-
일본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그는 일찍부터 서구의 문물 특히, 일본의 선진화된 문물을 보고 배워서 조선의 위기 상황을 서구문명을 통해 타개하려 했다. 혹자에 의하면 김옥균의 사상은 유물론적 사관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당시 조선의 유교체제와는 다른 개혁적 사상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