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의 동경 유학시절은 다양한 서구 현대 예술에 대한 관심과 수용의 시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태원은 당대 일본 및 서구문학에 대한 흐름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어느 정도 확고한 문학관을 구축하면서 법정대학을 중퇴하고 얼마 후 귀국길에 오른다. 그리고 귀국 후, 박태원은 곧바로 작품
작품으로 ‘피로’(1933),‘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 ‘성탄제’(1937) 등의 단편과 ‘천변풍경’(1936),‘갑오 농민 전쟁’(1963) 등의 장편이 있다.
2. 박태원의 작품성향과 구인회
박태원은 중인계층의 서울 토박이였다. 당시 그의 부친은 약국을 운영하였고 숙부는 천변에서 병원을 운영하였다
박태원과 재혼한 것이다. 특히 권영희는 박태원과 막역한 문학적 교류를 나누었던 이상의 연인이었다는 설이 있다. 작품으로는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자의식을 모더니즘적인 기법으로 묘사한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년)를 비롯하여 동생 박문원이 장정을 맡은 소설집 《천변풍경》(1936년),
작품 수는 대략 60여편에 달하며 그것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천변풍경〉등 시정에 흐르는 여러가지 소시민적인 사건을 소재로 한 세태소설류, 〈소설가구보씨의 일일〉등 심리주의적인 수법으로 당대의 무기력한 인텔리의 생태를 그리고 있는 작품군, 〈우맹〉등 신문이나 잡지의 흥미를 위주로 한
작품들과 모더니즘 소설적 측면에 집중되어 있었던 박태원에 관한 연구는 근래에 들어서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았거나, 주목받지 못했던 작품들까지 확산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성향은 크게 다섯 가지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박태원의 통속소설은 작품의 의미를 재탐색하는 논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