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박태원의 출생과 생애
박태원은 1910년 1월6일에 서울 수중박골(京城府 茶屋町 七番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성이고 고려 충선왕 때 밀성군으로 봉임된 척의 이십오대 손이다 조선총독부 보관본인 밀성 박씨세보에 의하면 증조 박승진은 장사랑, 조부 박두병은 삼서관을 지냈으며, 부친 박용환
박태원의 섬세한 기법을 살펴보고 그의 작품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것이 우리 연구의 목적이다.
1. 최재서와 임화 비평의 재해석
『천변풍경』을 둘러싼 비평 논의의 시작이 된 글은 최재서의 비평이었다. 최재서는 주지주의적 학자로 지목되어왔으며 비평가이기 전에 인문학자
소설가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을 중심으로 해서 박태원의 모더니즘이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바탕으로 그 변모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박태원과 1930년대 모더니즘 사조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를 갖도록 하겠다.
Ⅱ. 본론
1. 주관성의 세계 모더니즘
예술관에 있어 모더니즘의
박태원에 관한 연구는 다양한 범주에서 현재까지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박태원의 작품 중에서도 「소설가구보씨의 일일」이나, 『천변풍경』과 같은 대표작품들은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연구 경향과 쟁점을 다룬 논의가 있을 정도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대표작품들과 모더니즘 소설적
중심인물들이 서울의 치안담당자에게 서울에 댄스홀을 허가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개 탄원서 형식의 글이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서양과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댄스홀조차 통제되고 있었다. 위 글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현대화 과정에서 사회적 정황이 매우 암울했음을 알 수 있다.
3. 박태원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