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영, 진진웅, 김종래, 장금봉 등과 순천 송광사, 동래 범어사에서 승려 궐기 대회를 개최하고 한일불교동맹조약 체결을 분쇄.
- 3월 15일, 범어사에서 조선임제종 종무원 설치, 서무부장 취임.
- 3월 16일, 조선임제종 관장서리에 취임.
1912년
- 경전의 대중화를 위해 ‘불교대전’ 편찬을 계획. 경
박한영朴漢永대종사 문하에 들어가 불경을 배웠으며 금강산에 구도여행을 다녀왔다.
1935년 박한영 대종사의 권유로 중앙불교전문학교(동국대 전신)에 입학했으나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등단하면서 학교를 중퇴하고, 김광균·김달진·김동인·오장환·함형수 등과 동인
박한영·진진응·김종래 등과 승려궐기대회를 개최하여 일본의 조동종(曹洞宗)과 한국불교의 통합을 꾀한 이회광 등의 친일적인 불교행위를 규탄·저지했다. 1913년 박한영 등과 불교종무원을 창설했고 1917년 8월 조선불교회 회장에 취임했다. 그해 12월 어느날 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박한영·진진응·김종래 등과 승려궐기대회를 개최하여 일본의 조동종(曹洞宗)과 한국불교의 통합을 꾀한 이회광 등의 친일적인 불교행위를 규탄·저지했다.
1913년 박한영 등과 불교종무원을 창설했고 1917년 8월 조선불교회 회장에 취임했다. 그해 12월 어느 날 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박한영 대종사 문하생으로 입문하여, 중앙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한다. 1935년에 교장인 박한영 대종사의 권고로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하지만 한 해만 다니고 그만 둔다.
1936년에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벽」으로 당선된다. 미당은 동아일보 문예란 일반 투고작으로 보냈던 「벽」이 우연히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