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지라고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하며, ‘조선’ 과 ‘동아’ 두 신문의 쇠퇴와 소멸과정에 집중하여, 핵심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방응모, 김성수의 행적을 살펴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이러한 양상이 나타나게 된 30년대와 40년대의 언론사 관련 시대의 흐름을 살펴보고, 이
민족지의 일제 시대사를 투쟁과 계몽의 역사로 규정하면서, 한걸음 나아가 그것을 발행인의 공적으로 돌리고자 하였다. 그는 일제하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대해 언급하면서, "[독립신문]의 영광의 정신을 이어받은 두 민족지의 영광된 투쟁과 계몽의 발자취를 가능하게 한 것은 김성수 방응모 두
신문'이라는 표어 아래 경영과 제작에 혁신을 단행하였다. 그 뒤 신석우 안재홍 유진태(兪鎭泰) 조만식(曺晩植) 등이 사장을 맡았으나, 경영면에서 안정을 기하게 된 것은 1933년 방응모(方應謨)가 인수 운영하면서부터였다.
방응모는 신문경영을 맡은 후, 총액 50만 원의 주식회사로 개편하고 태평로
'친일인명사전 수록자명단'의 공개
(한겨례신문 08년 4월 29일자)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는 29일 박정희 전 대통령,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자, 방응모 조선일보 사주,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 서정주 시인 등이 포함된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을 공개했다.
윤경로 편
한국의 민영신문은 서재필의 주도하에 발간되었던 독립신문(1896)이 처음이다. 이후 황성신문, 제국신문, 대한매일신보가 민간이 발행하였던 대표적인 민족지이다. 이런 개화기의 민영신문과 일제하의 민영신문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개화기에는 신문의 발행권이 정부, 신지식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