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지, 황종희, 고염무 등 소박한 유물주의 사상가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특히, 철학의 집대성자인 왕부지는 이기(理氣), 심물(心物), 천인(天人) 등의 관계에 관한 문제로부터 객관 유심주의인 정주학의 이학(理學)과 주관 유심주의인 육왕의 심학(心學)을 비판하며 유물주의의 전통과 명청시대 유물주
학파에 동향은 어떤지 살펴보고, 근대사에서 氣論者들의 입장을 비교 분석해 보고자 한다.
氣論의 연구는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마치 인류의 영원한 과제로 남는다. 기론을 논할 때 우주론적인 면에서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방향과 현실세계에 대한 적용의 측면에서 실용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때문
<청초 경세학과 그 영향>
1. 명나라 멸망 위기
① 상공업의 발달로 인해 부의 불균등한 분배와 대규모의 토지겸병 현상
명나라는 강력한 중앙 집권제를 바탕으로 농업생산을 회복하여, 이에 따라 상업과 수공업도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한편 상업의 발전은 부의 불균등한 분배를 가속화 하여 대규모
장자는 대략 기원전 369년부터 기원전 295년간에 활동했으며, 장자의 생애는 그의 인생역정 뿐 아니라 세속을 초월한 생활방식으로 인해 전설과 낭만이 가득했다. 그는 맹자보다는 조금 늦고 굴원보다는 조금 이른 시기에 활동했으며, 몽 땅에서 옻칠 생산을 관리하는 말단 관리를 지내기도 하였다.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