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화학당에 평교사로 취임하여 영어와 국사 및 가정, 웅변, 국문, 서법 등을 가르쳤다. 한편 야간에는 신민회의 기간학교로서 청년의 독립사상 고취에 공헌이 컸던`청년학원`의 교장을 겸하여 밤낮없이 교육에 헌신하였다.당시 배화학당에서 교육이 금지된 우리 역사를 영어문법 시간에 몰래 가르치고,
학당’
+ 1886년 스크랜튼 여사가 여성교육기관인 이화학당 설립.
+ 1894년 평양에 정의여학교, 1895년에 동래에 일신여학교,
1897년에 인천에 영화여학교, 1898년 서울에 배화학당,
1903년 평양에 숭의여학교 등
첫째, 복음전도 및 신자의 기독교적 훈련, 교역자 양성.
+ 둘째, 봉건사상
배화학당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가정교육’ ‘신편언문체법’등 교과서를 지었으며, 무궁화로 우리 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 삼천리라는 자수본을 고안하여 학생들이 무궁화를 수놓는 마음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1918년 홍천의 모곡에 교회와 학교를 건립하였다. 모곡에서도
뒤에는 정식으로 교회를 세워도 되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1900년 4월 부활주일(15일)에 교인 약 70명을 배화학당 기도실에 집합시킨 후 부인 7명, 남자 3명, 여학생 8명 등 모두 18명에게 세례를 준 후 교회창립 예배를 드렸다.” 『자교교회 100년사 1900~2000』(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자교교회, 2001), 4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