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성 배경
백제계석탑은 충청, 전라지역 즉, 백제문화권이었던 지금의 호남권에서 대부분 발견된다. 왕궁리 오층석탑을 제외하면 모두 고려시대에 세워진 이 백제계석탑들은 백제 전형양식이라 불리는 정림사탑을 거의 모방하거나 부분적으로 닮아있다.
고려 태조 왕건(877-943)은 통일 후 고대
석탑은 불교 수용 초기의 목탑을 본따서 재료를 석재로 바꾸어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들었으니, 그 대표적인 것이 익산 미륵사지석탑과 부여 정림사지석탑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도 옛 백제 지역에서는 백제시대 석탑의 양식을 계승한 석탑이 다수 만들어 졌는데, 이들을 백제계석탑이라고
Ⅰ. 개요
신라의 삼국통일은 우리 민족사상 큰 의의를 갖는다. 지금까지 한민족은 삼국으로 분립되어 각각 특성을 가지고 발전하여 왔다. 삼국으로 분립되어 있는 동안 외민족과의 충돌도 많았지만 사실상 삼국간의 경쟁 충돌이 더 많았다. 이것은 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 큰 손실이었다. 또한 이보다
Ⅰ. 신라시대(신라)의 유학
삼국 중 가장 발전이 늦은 신라도 불교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여 가장 불교적인 성격이 강한 국가를 이루었으나, 통일을 전후한 무렵에 오면 유교적인 정치 이념과 제도의 필요성이 더욱 증대되었다. 신라가 팽창하여 넓은 영토와 많은 주민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불교적
석탑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반면에 옛 백제지역에서는 백제식의 석탑이 일부 부활되고 있으며 개성을 중심으로 한강 이북지방에서는 고구려 탑의 전통과 중국불탑의 영향으로 다각 다층석탑이 성행한다는 것이다. 백제계의 고려석탑으로는 전북 익산의 왕궁리오층석탑을 비록하여 충남 부여의 장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