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학원(1921 설립)에서 수학(보습과 과정-1922년까지), 둘째 이름 원삼을 사용1923(20)백학학원에서 교편 잡음(9개월 동안)1924(21)4월 학기에 맞추어 일본 유학
경찰 기록-도쿄쇼우소쿠 예비학교, 니뽄 대학전문부 재학
검찰 신문조서-킨조우고등예비학교 1년간 재학1925(22)1월에 귀국, 대구 조양회관을 중심
백학학원을 다니면서 안동학맥과 한주학맥을 부지불식간에 어우르게 되었다는 것에 특이점이 있습니다. 그는 두 학파의 분위기를 같이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 이육사는 중국에서 군사간부학교를 수료했습니다. 군사간부학교는 독립전쟁을 벌여야만 독립할 수 있다는 의열단투쟁에서
졸업하고. 대구로 이사간 뒤 부친의 엄명으로 일찍 결혼하면서 처가 마을에서 백학학원을 다니고 또 그곳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가문의 영향으로 민족문제에 일찍이 눈을 떳고, 일본에 1년 정도 유학하면서 그것이 더욱 굳어졌을 것이다. 귀국하여 대구에서 문화활동을 벌이던 육사는 베이징을
백학 서원을 거쳐 일본 유학길에 오름.
- 16세 때 안동읍에 갔다가 눈이 짓무른 아이의 모습을 보고 우리 민족이 일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무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확신을 얻게 됨.
- 일본 유학 중, 칸토 대지진 사건으로 조선인이 학살되는 것을 목격하고 민족 독립
의 의지를 불태움.
2. 독
지난 8일 충남 천안에서 한 초등학생이 학원 스트레스 등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데 이어 14일 경기도 파주시의 한 초등학생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며 목숨을 끊었다. 이날 낮 12시20분쯤 파주시 파주읍 연풍리 임모(43)씨 집에서 임씨의 딸(12Y초등학교 6학년)이 유서를 남기고 머플러로 목을 맨 채